경제

동부그릅 ..

참도 2013. 11. 20. 11:54

그룹이 큰 계열사를 매물로 내놓을 때는 곡절과 사연이 있기 마련이다.


금호는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무리하게 인수했다가 수년 만에 다시 토해내야 했다. 흔히들 “체했다”고 표현한다. 금호는 대우건설 인수 당시 금융회사와 사모펀드(PEF)들을 재무적 투자자(FI)로 끌어들였다. 이들에게 풋백옵션(나중에 이들이 가진 대우건설 지분을 금호 측이 일정 가격에 되사주는 것을 약속)을 보장했다가 탈이 났다. 결국, 이에 대한 책임을 둘러싸고 오너 형제간 싸움까지 벌어져 그룹이 쪼개졌다. 무리한 M&A가 불러온 대표적 ‘승자의 저주’ 사례다. 

 

유진은 하이마트를 다시 팔았다. 하이마트를 인수한 뒤 유통업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창업자이자 오너인 선종구 회장에게 일정 지분과 경영권을 보장해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사이가 틀어졌고 경영권 분쟁까지 붙었다. 이 바람에 유진은 이 꼴 저 꼴 다 보고 손을 털어야 했다. 주인 노릇 한번 제대로 못 한 채 옛 주인에게 휘둘리다 물러난 셈이 됐다. 

 

웅진은 그룹을 키우겠다는 욕심에 건설사를 비싼 값에 인수한 것이 화근이 됐다. 극동건설을 인수한 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다 웅진코웨이, 웅진패스원, 웅진식품 등 알짜배기들을 시장에 내놔야 했다. STX는 구조조정 타이밍을 놓쳤다. 해운과 조선업 침체하면서 시장 전문가들이 일찌감치 유동성 경고음을 계속 울려댔다. 그런데도 STX는 ‘현금성 자산이 얼마가 있네’, ‘걱정할 정도가 아니네’라는 소리만 했다. 상황이 더 나빠져 유동성 확보에 나섰을 때는 이미 두 발, 세 발 늦었다. STX 에너지를 시작으로 해운과 조선 등 여러 주력 계열사가 팔려나갈 운명이다.


동부 김준기 회장이 최근 반도체 사업 포기를 선언했다. 비메모리 반도체(시스템반도체) 업체인 동부하이텍(옛 동부전자)을 매각하기로 했다. 그룹의 고강도 재무구조개선을 위한 선제조치 중 하나다.

 

[동부하이텍의 비메모리 반도체 개발 현장]

 

김 회장은 아마 오랫동안 밤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반도체 사업을 살리기 위해 발버둥 쳐 온 옛날 일을 생각하면 잠이 올 리 없다. 동부는 반도체 사업을 살리기 위한 합병과 분할을 반복했다. 10여 년간 투입한 자금은 2조원이 넘는다. 반도체 증자에 참여하거나 대출 보증을 선 계열사들의 주가나 신용등급은 제자리를 걷거나 뒷걸음질치기도 했다. 이런 걸 두고 ‘그룹 리스크’라고 한다.

 

시장의 우려가 커질수록 김 회장은 보란 듯 비메모리의 새 역사를 만들어 내겠다는 의지를 내보여왔다. 뚝심, 소신, 꿈같은 것이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자존심, 고집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동안 그룹 관계자들로부터 전해 들은 반도체에 대한 김 회장의 의지를 감안하면 동부하이텍 매각은 순수 자의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중견 그룹들이 연이어 무너지는데 놀란 금융당국과 채권은행이 동부에 강력한 구조조정을 요구했고 김 회장이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타의 반, 자의 반인 셈이다.   

 

사실 동부의 반도체 사업은 시작부터 시련이었다.


1997년 3월, 동부는 동부전자를 설립한다. 256메가 D램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7월 충북 음성에 팹(FAB, 반도체 실리콘웨이퍼 제조공장) 건설을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외환위기가 터졌다. 자금조달에 애로가 생기면서 팹 공사는 중단됐다. 김준기 회장은 2000년 3월 팹 건설을 다시 지시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시아권 국가들이 외환위기를 상당 부분 극복한데다 IT(정보통신)의 성장성에 대한 평가가 좋던 시점이었다. 동부는 팹 공사를 재개하면서 메모리 대신 비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으로 전환했다. 그리고 일본 도시바와 기술도입 계약을 맺는다.

 

2001년 4월 상업생산에 들어간 동부는 그 해 11월 산업은행 등 11개 금융회사로부터 5100억원을 대출받았다. 비메모리 후발주자로 고객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자 2002년 9월 동부는 미국 TI(텍사스인스트루먼트) 등을 거래선으로 확보하고 있던 아남반도체를 전격 인수한다. 이때부터 반도체사업은 가속도가 붙는 듯했다. 2004년 4월에는 설비 증설을 위해 산업은행 등 15개 금융회사로부터 1조 3000억원을 빌린다. 그리고 10월에는 동부전자와 아남반도체를 합병하고 사명을 동부아남반도체로 바꿨다. 

 

그러나 반도체 사업의 실적은 기대에 한참 못 미쳤다. 대만과 일본, 미국 등의 비메모리 선발업체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만만찮았다. 여기에다 사업 초기의 설비투자 때문에 감가상각비가 많이 반영되면서 영업손실이 지속됐다. 금융비용은 순손실을 증가시켰다. 2004년에는 매출 2628억원, 영업손실 1019억원, 순손실 2270억원을 기록했다. 순손실이 매출에 육박했다. 2005년에 매출은 3563억원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영업손실이 2136억원으로 늘어났다. 순손실도 3197억으로 커졌다. 2006년에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매출 4424억원, 영업손실 1908억원, 순손실은 3329억원을 냈다. 아남반도체를 인수한 뒤 합병하고 난다, 긴다 하는 삼성 출신들을 구원투수로 투입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다.

 

앞뒤 잴 여유가 없게 된 동부는 반도체를 살리기 위한 특별처방을 내린다. 2006년 3월 동부아남반도체 사명을 동부일렉트로닉스로 바꾼다. 그리고 1년여 뒤인 2007년 5월 동부일렉트로닉스를 동부한농에 합병시킨다. 비메모리 반도체 회사와 농약 비료 회사간 합병에 시장은 어리둥절해했다. 동부는 “동부한농의 화학 사업과 동부일렉트로닉스의 반도체사업을 접목시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1조 7000억원이 넘는 부채와 연간 3000억원 이상의 적자를 내는 반도체 사업의 연명에 현금흐름이 좋은 농약 비료 화학 사업을 이용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부실기업 물타기 사건’이라고 불렀다. 합병 전 동부한농의 매출구조를 보면, ‘석유화학(플라스틱 스티로폼 원료)’ 30%, ‘비료와 농약’ 40%, ‘합금 철과 기타사업’이 31%였다. 따라서 시너지를 위한 두 회사의 결합이라는 주장은 어색했고 아귀가 맞지 않았다. 


동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당시 은연중에 속마음을 살짝 드러냈다. 그는 “반도체가 적자이긴 하지만 앞으로 대규모 투자계획이 없다. 이자가 문제이기는 한데 동부한농의 현금창출 능력이 좋아 이 역시 걱정할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합병회사 경영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려고 한 것이었는데, 듣기에 따라서는 반도체가 까먹는 부문을 농약 비료가 당분간 메워 나가면 된다는 설명으로 들렸다.   

 

2010년 6월 동부는 동부하이텍에서 농업사업부문을 떼어내 회사를 새로 하나 만든다. 사명은 동부한농(현 동부팜한농). 분할이유는 반도체 부문(화학 부문 포함)과 농업부문 분리로 사업특성에 맞는 신속하고 전문적 의사결정 체제를 확립하고 경영위험 분산과 효율성 증대 효과를 얻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애초 농업사업은 애초 동부한농과 동부일렉트로닉스 합병 당시에 떼내는 게 맞았다. 합병 3년이나 지난 시점에 분할할 것이 아니라. 

 

[최근 열린 동부 경영전략회의에서 김준기 회장은 그룹 유동성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어쨌건 이런 비판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에 적어도 동부 같은 비메모리 회사가 하나쯤은 꽃을 피워야 한다는데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는 점이다. 3500억원이 넘는 사재를 비메모리 사업에 투입한 김 회장의 진정성도 상당 부분 인정을 받았다. 97년 이래 동부의 반도체사업은 16년 만인 올해 처음으로 연간 영업흑자가 예상되는 분위기다. 상반기에 48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작은 숫자다. 하지만 동부와 김준기 회장에게는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라는 희망을 갖게 해주는 숫자이기도 하다. 

 

<동부하이텍 최근 실적>

 

 2010

 2011년

 2012년

 2013년 상반기

 매출

 6200

 5522

 5907

 2537

 영업이익

-3784

 -354

 -156

 48

 

이런 시점에서 반도체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한 김 회장의 심정은, 1999년 그룹간 빅딜로 LG반도체를 당시 현대전자(현 SK하이닉스)에 넘겨줘야 했던 구본무 회장의 심경과 비슷할까. 구 회장은 그 뒤 밤잠을 이루지 못했고, 한동안 임원들에게 반도체의 ‘반’자도 꺼내지 말라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