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평소 강조하던 대로 '법과 원칙에 따라'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검찰 수사 결과 국정원의 선거 개입과 정치 관여 혐의가 드러났으니
국정 최고 책임자로서 입장을 밝히고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는 게 '법과 원칙'에 부합한다.
그러나 그가 '침묵'을 지키는 사이, 국정원 사건은 국정조사 논란을 넘어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등 엉뚱한 방향으로 번져가고 있다. 대학생들이 시국선언에 나서고
진보와 보수단체가 거리에서 맞붙는 등 수습은커녕 갈등과 대립이 전 사회로 확산돼가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된 데는 국정 최고책임자인 대통령과 청와대의 책임이 크다.
박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통해 국정원의 범죄 혐의가 드러났는데도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5년 7월 안기부의 불법도청 사건이 불거지자 처음부터
"정부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국가기관의 불법행위로, 유사한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조처해야 한다"며 국정원의 자체 조사를 지시했던 것과 대조적이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민감한 국익이 담겨 있는 정상회담 대화록(대화록)의 일부가 여당 의원들에 의해 공개되는,
외교사상 전무후무한 일이 발생했는데도 자신들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허태열 청와대 비서실장은 대화록 열람·공개를 "사전에 전혀 몰랐으며, 아침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
"(21일 국회 운영위 답변)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에선 청와대 관계자들이 대화록 공개의 정당성을 강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 주요 인사는 23일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원칙과 신뢰,
법대로 아니냐. 검찰 수사가 마무리됐으니 대통령으로서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책을 내놓을 책임이 있다.
이렇게 중대한 사건에 대해 대통령과 청와대가 나 몰라라 팔짱끼고 있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둘째,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의 적반하장 대응도 사안을 꼬이게 하는 중요 원인이 되고 있다.
"대선 때 덕 본 것이 하나도 없고, 오히려 우리가 피해자"(최경환 원내대표)라거나
"(국정원 사건의 본질은) 민주당이 국정원에 프락치를 집어넣어 인권 유린까지 자행한 국기문란 사건"
(김태흠 원내대변인)이라고 주장한다. 국정원이 심리정보국 직원 70여명을 동원해 대국민
심리전을 펴는 불법 행위를 벌였다는 검찰 수사 결과를 부정한 것일 뿐 아니라 되레 국정원을 공개적으로 두둔하는 모양새다.
서상기 국회 정보위원장 주도로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화록을 열람하고 그 내용을 보수 언론에 유출한 것도
국정원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여론의 관심을 호도하려는 '물타기 전략'으로 비난받을 만하다.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이후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정보기관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위원회 신설 등 국정원 개혁안을 앞장서 내놓았던 것과 뚜렷이 대비된다.
셋째, 국정원의 거듭된 불법 정치 관여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 때 원세훈 당시 원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선거에 개입한 혐의가 드러났음에도 지난 20일 남재준 국정원장의 '판단'으로 대화록을 정보위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에게 보여줬다.
지난 대선 당시 대화록을 공개하라는 새누리당의 요구에 대해 대통령지정기록물이니 공개할 수 없다고 했던
스스로의 판단을 하루아침에 뒤집은 것이다. 검찰이 대화록을 공공기록물로 봤기 때문에 열람시켜도 된다고 설명했지만,
다수의 학계나 법조계 전문가들은 대화록을 여전히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보고 있다.
더욱이 국정원은 대화록의 원본까지 국회에 들고 가서 대조 열람을 허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불법임은 물론, 국회 인사청문회 때 국정원의 정치 중립을 누누이 강조했던 남재준 원장의 발언과도 배치되는 행동이다.
<월간조선>의 인터넷 보도를 보면, 국정원은 이미 2009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자의로 '편집'했다.
국정원이 이 편집본을 "대내외에 전파해 북한·좌파의 정상회담 선언 전면이행 주장을 제압해 나가겠다"고
밝힌 데서 알 수 있듯이 '국내 정치용'으로 만든 뒤 미묘한 시기에 언론에 유출한 혐의가 짙다.
문건 작성부터 유출까지가 모두 불법일 가능성이 높다. 이 역시 불법도청 사건이 터졌을 때 철저한 자체
진상조사를 벌여 검찰에 그 결과를 넘겨주고 대국민 사과문까지 낸 '노무현 국정원'과 뚜렷이 대조된다.
박 대통령은 2007년 1월 초 당시 노 대통령이 4년 중임 원포인트 개헌론을 제기했을 때 "대통령 눈에는 선거밖에는 안 보이느냐"며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했었다. 개헌을 정략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집권에 성공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과 국정원이 명백한 불법 행위를 저지르고 있는데도 아예 모른 체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참 나쁜 대통령"(3월4일·이언주 민주당 원내대변인 논평)을 넘어 박근혜 정부 자체가
'나쁜 정권'으로 기록될 소지가 커 보인다. 박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2일 자신의 트위터에
"국정원의 거듭된 정치 개입에 대해 대통령이 입을 열어야 할 때다.
철저히 수사해 책임자를 처벌하는 것만이 박 대통령과 나라가 살길"이라고 말했다.
김종철 기자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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