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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공주 이혜경

참도 2011. 6. 1. 17:36

마지막공주’ 이해경 뉴욕서 황실을 말하다

뉴시스 | 유세진 | 입력 2011.06.01 14:26 | 누가 봤을까? 50대 여성, 대전

 

【서울=뉴시스】유세진 기자 = "아버지 의친왕께서는 팥밥을 물에 말아서 드시는걸 즐겼어요."

조선 황실의 마지막 공주로 불리는 이해경 여사(81)가 뉴욕에서 2주 연속 조선의 마지막 모습인 대한제국 황실을 회고하는 세미나를 펼쳐 눈길을 끌었다.

이해경 여사기 5월21일과 28일 뉴저지 잉글우드 FGS 커뮤니티 센터에서 '조선황실의 마지막 산증인, 황실을 말한다'는 세미나를 가졌다고 '글로벌웹진' 뉴스로(www.newsroh.com)가 보도했다. 이해경 여사는 고종 황제의 다섯 번째 아들로 당시 생존한 왕자 중에 순종 다음의 왕위 서열인 의친왕(義親王)의 다섯 번째 딸이다.

의친왕은 모두 12남9녀의 자손을 봤으나 정실부인 연안 김씨와의 사이엔 후손을 보지 못했다. 이중 장자인 이건 왕손과 차자인 이우 왕손만이 황적에 입적됐으나 이건은 훗날 일본인으로 귀화했고 이우는 정략결혼을 거부, 박영효의 손녀인 박찬주와 결혼했으나 34세의 나이에 히로시마 원폭으로 사망했다.

이해경 여사가 조선 황실의 유일한 공주로 불리는 이유는 의친왕비가 자신의 호적에 이 여사를 유일하게 올렸기 때문이다. 조선왕조에서는 정실부인에게서 낳은 딸을 공주, 후궁에게서 얻은 딸은 옹주로 불린 것을 고려하면 정식으로 입적된 이해경 여사는 공주로 불러야 맞다는 지적이다.

이 여사는 의친왕비와 함께 유일하게 왕궁에서 생활해 격동의 궁궐 생활을 또렷이 기억하는 산 증인이라는 점에서 적잖은 관심을 모았다. '비둘기집'으로 잘 알려진 '황손 가수' 이석(본명 이해석·70)씨가 친동생이기도 하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해경 여사는 고종 황제의 60세 생신기념사진 등 각종 자료 화면을 곁들여 눈길을 끌었다. 조선조 마지막 구황실의 배경과 의친왕과 왕비와의 추억, 3대궁이었던 창덕궁운현궁 사동궁의 생활에 대해 생생한 증언과 함께 청중들과 질의응답도 진행했다.

이 여사는 사동궁의 옛 모습을 간직한 사진을 오래도록 보관하다가 10여년 전 '나의 아버지 의친왕'이라는 저서를 출간, 세상에 공개했다. 이 여사에 따르면 의친왕은 궁밖에서 여러 후궁들과 생활했는데 가끔 궁에 들어오면 자신과 겸상(兼床)을 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버지께서 팥밥을 물에 만 팥수라를 드시곤 했어요. 고기는 특히 차돌백이와 편육을 좋아하셨지요. 취미로는 골패 맞춤과 마작이었는데 마작은 온 가족이 함께 했는데 덕분에 여학교를 졸업할 때는 나도 선수가 되었지요"하고 웃었다.

의친왕은 젊은 시절부터 호방한 성품으로 일제에 굽실대지 않고 왕족의 위엄을 드러낸 인물이었다. 일제가 그보다 스무살이나 아래인 동생 영친왕(英親王·당시 11세)을 황태자로 책립, 일본에 유학을 보내 꼭둑각시로 만드려고 획책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의친왕은 1919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로 탈출을 기도했다가 만주 안동에서 발각, 송환되는 일도 있었다.

의친왕비는 이 여사에게 더없이 애정을 기울였지만 실수를 했을 때는 서릿발처럼 엄격함을 보였다. 어릴 적 한번은 궁밖의 친구 집에 놀러가서 늦어서 궁이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단다.

왜정 치하에서 궁 생활은 일종의 연금(軟禁)처럼 무척 답답했다. 해방 후엔 이승만 정권으로부터 궁에서 쫒겨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시련이 이어졌다. 몰락한 왕족의 후손은 자신들이 왕손이라는 사실조차 비밀 아닌 비밀로 부쳐야 했다.

경기여고와 이화여대 성악과를 졸업한 이 여사는 미국 유학으로 암울한 현실을 탈출하고자 했다. 한국전쟁 때 부산에 피난갔을 때 미군 사령부에서 사서로 일한 인연으로 1956년 장학금을 받고 텍사스 메어리하딘 베일러 칼리지에 유학할 수 있었다.

당시 유학에 필요한 역사 시험에서 한국 역사를 전혀 몰라 세 번이나 떨어진 웃지 못할 비화도 있다. 궁에서도 왕과 왕비가 우리 역사를 전혀 들려주지 않은 이유는 왕손들이 핍박을 받지 않을까 우려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정작 한국 역사를 제대로 배운 것은 이 여사가 콜럼비아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할 때였다. 머나먼 이국의 도서관에서 영어 서적을 통해 우리 역사를 배운 조선조 마지막 공주의 모습은 참으로 애달픈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콜럼비아 대학 도서관에서 27년을 봉직한 이해경 여사는 은퇴 후에도 뉴욕에서 생활하고 있다. 10년 전부터는 이곳 뉴저지 FGS커뮤니티센터에서 합창단을 지도하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FGS 커뮤니티센터측은 "일제가 식민시대에 조선 황실의 법통을 끊으려 획책했다면 이승만 정권은 개인의 욕심으로 궁에서 황손들을 궁에서 내쫒았다"며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우리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이때 조선 황실에서 실제로 생활한 마지막 생존자인 이해경 공주님을 통해 황실의 생활과 역사를 한인사회에 알리고 역사적 자료로 남기자는 뜻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두 시간여 동안 건강한 모습으로 궁 생활을 회고한 이 여사는 "나에겐 다섯분의 어머니가 계셨다. 호적상 어머니 의친왕비와 낳아주신 어머니, 젖을 준 어머니, 길러주신 어머니 등이다"라고 말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산 이해경 여사는 '더이상 공주는 없다'며 '조선 황실의 마지막 공주'라는 호칭이 덧없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해 왜곡 날조된 우리 역사를 되찾는 일에는 우리 모두가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힘 주어 말했다.

dbtpwl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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