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군수 박물관
'박물관 군수' 영월 박선규]
포도상자 들고 대기업 찾아가고 CEO에겐 지원 부탁하는 손편지
곧 '라디오스타' 박물관도 개관… 작년 158만명 방문, 지역에 기여
"영월에 '라디오스타 박물관'을 짓는데, 라디오 역사를 보여줄 특별 전시관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하기 위해서였다.
"포도 20상자를 들고 갔죠. 설득해야 하는데 빈손으로 갈 수가 있어야죠." LG전자는 특별관 설치 대신,
초기부터 최근 것까지 라디오 40여대를 기증하기로 했다.
영화 '라디오스타'의 무대인 강원도 영월군에 오는 4월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문을 연다.
영월KBS가 2004년 송출을 중단하고 철거 위기에 놓이자, 영월군이 인수해 박물관으로 꾸민 것이다.
라디오 방송의 역사와 수신기의 발전 과정 등을 볼 수 있다. 또 직접 라디오DJ로서 방송을 제작·녹음할 수 있다.
이미 임시 개관해 관람객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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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규 군수는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을 것”이라고 했다. /영월군청 제공
민화(民畵), 곤충, 지리(地理), 악기 박물관부터 영월과 전혀 무관한 아프리카·인도박물관까지 있다.
'박물관'은 그가 영월을 되살리려고 낸 아이디어다.
"석탄과 텅스텐으로 우리나라 산업화 기틀을 마련했던 영월이 '폐광(廢鑛) 지역'이라는 절망스러운 이름을 얻었잖아요.
인구도 13만명에서 4만명대로 줄고요. 폐교(廢校)들과 문 닫은 건물들만 흉물스럽게 됐죠."
그는 이 슬럼화의 주범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시키기로 했다.
"예전에 일본 하코네에 갔다 온 적이 있어요. 인구는 1만명 정도인데, 박물관이 열 개도 넘더라고요. 규모는 작아요.
문제는 콘텐츠지, 크기가 아니더라고요. 다들 빵·커피 같은 먹거리와 기념품도 팔아 이익을 남기더군요. 이거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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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라디오들. /영월군청 제공
사람들의 제안서를 받았다.
2008년엔 문화체육관광부에 신청해 영월을 '박물관 특구'로 지정받았다.
특구 소문을 듣고 벼루·초콜릿·칼 등 박물관을 짓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왔다.
하루에 몇 시간씩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황당한 사람도 많았다고 한다.
"정말로 박물관을 지을수 있는 사람인지 직접 실사(實査)를 다녔어요.
'진품 고대 유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 별 소장품이 없는 사람,
턱없이 큰 부지를 요구하는 사람…." 끊어내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박물관과 함께 관광객(유료 관광객)이 늘어났다.
2006년 54만명이던 것이 작년에는 158만명으로 늘었다.
"박물관이 무슨 재미가 있어 오겠느냐"며 애초 반대하던 일부 주민도 달라졌다.
"주말에 자녀를 데리고 오는 부모도 늘었거든요.
이분들이 펜션에서 자고 식당에서 밥먹으니 지역경제도 조금씩 살아나는 거죠.
박물관 짓기에 군비(郡費) 25억원이 들었다.
나머지는 강원도·문화체육관광부·박물관협회 등에서 받았다.
그 돈이 왜 필요한지 그가 직접 설명하고, 기업을 찾아다니고 편지도 쓴다.
"2013년에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우연히 만났어요.
다짜고짜 명함을 건네고 '동강 사진 박물관에 삼성이 투자해달라'고 했죠.
그리고 영월로 와서 '존경하는 이재용 부회장님…'으로 시작하는 장문의 편지를 썼어요." 삼성전자는 이 박물관에 사진기의 역사를 공부하고 체험하는 '삼성 스마트갤러리'를 설치했다
. 나이지리아·앙골라·코트디부아르 등 아프리카의 주한(駐韓) 대사들도
'아프리카 박물관'에 들르려고 자주 영월에 온다. 데즈먼드 아카워 나이지리아 대사는
작년 봄 명예군민증도 받았다.
인도 대사는 인도 박물관을 둘러보고 "여기가 제2의 인도 문화원"이라고 했다고 한다.